No Yeol
Contemporary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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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Trip of Life』
2015 / 4 Jul. - 2 Aug.
Art Space Giant, Youngcheon, Korea
걷기가 형식이 될 때...
노병열의 <Flow-잃어버린 파랑을 찾아서>
하 윤 주(미학)
노병렬 작가의 작업은 흔히 미니멀 아트로 분류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특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대개 미니멀 아트라는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최소한의 예술’, 즉 표현을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작품의 형태·색채·구성을 극히 단순화하여 기본적 요소에까지 환원해간다는 뜻이다. 따라서 미니멀 아트는 사물의 근원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 예를 들어 원, 원기둥, 정사각형, 정육면체 등과 함께 어지러운 곡선보다는 간결한 직선을, 다양한 색채보다는 단순하고 정리된 색채가 어우러져 작품을 만든다.
이번 노병렬 작가의 작품 <Flow-잃어버린 파랑을 찾아서> 역시 언뜻 보면 정사각형과 직육면체, 그리고 흰색과 파랑이 주를 이루는 작품이다. 형과 색의 환원 측면에서 그의 작품을 본다면 그는 분명히 미니멀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의 내면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니멀 아트라는 용어는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걸림돌임을 깨닫게 된다. 즉 그의 작품은 ‘형과 색의 환원’이라는 표현방식을 선호하는 것이지 사물 자체가 목적이었던 과거 미니멀리즘의 제작 의도와는 구별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Flow-잃어버린 파랑을 찾아서>전은 미니멀 아트라는 수식어를 떼고 보아야 보이는 전시다.
내용 1. 걷기가 만든 예술
일상은 누구나 소유하고 있는 것이기에 한편으론 보잘 것 없지만, 서로가 죽고 죽이는 전쟁터든, 치명적인 전염병이 창궐하는 아수라장이든, 묵묵히 제 길을 가는 지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위협적이고 아이러니하다. 어떤 일에 자신의 일상을 소비하는 일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노병렬 작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의 많은 시간을 ‘걷기’에 할애한다. 걷기가 뭐 그리 대단한 활동인가 의아해 할 수 있겠지만, 빠른 속도를 지향하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의미가 달라진다. 인류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호모 에렉투스의 출현부터, ‘걷기’는 너무나 본능적인 활동이다. 현 인류는 자신의 것인 ‘걷기’를 느리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소유하지 못하고, 그래서 걷기는 지금 소외되어 있다. 생산지향적인 사회에서 걷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이자 속도의 시대를 거스르는 행위다. 그렇지만 이러한 소외의 상황을 바라보는 작가는 일상의 일부를 ‘걷기’로 채운다. 그래서 걷기는 작가에게 창작의 원천이다. 작가의 작업실이 위치한 풍각면 언저리는 ‘무미건조하고 물질화 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생명과 희망의 싹이 움트고 있음을 음미하고, 조화로운 공존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시간과 공간’이 된다. 수많은 시간 걸으면서 그의 감각에 포착된 장면들이 사진과 영상으로 저장되어 오늘의 전시를 만들었다.
내용 2. 공간의 치유
대부분의 전시공간은 작품을 관람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보조 수단이다. 사람들이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가는 목적은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예술공간 <거인> 역시 전시장으로서, 작품 감상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노병렬 작가는 2001년부터 시작된 고드름 시리즈(Icicle series)로부터 2005년 이후 물결 시리즈(wave series)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생활도구(주전자, 옷걸이, 냄비 등)나 캔버스를 물감에 담가 꺼내고 마르면 다시 물감에 담그는 행위를 반복하여 만들어지는 고드름 형태를 통해 인공적인 물질(물감)과 자연현상(흘러내림과 마름과 자람)을 결합하여 천천히 자라는 인공생명체를 만들어왔다. 이번 <Flow-잃어버린 파랑을 찾아서>전도 이제까지 노병렬 작가가 작업해왔던 작품들이 매달리고, 그려지고, 바닥에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그들은 전시장에 펼쳐져 단순히 관람객의 시선을 기다리는 오브제가 아니다. 예술공간 <거인>의 과거와 대화를 시도하는 매개물이다. 예술공간 <거인>은 과거 냉동 창고였던 곳으로 작가는 예술공간 <거인>에서의 전시를 고민하면서, 전시장과 어떤 대화를 나눌 것인가를 생각했다. <거인>이 냉동 창고에서 전시장으로 새 옷을 입었다고는 하지만 과거의 위용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잉여물이 산을 이루던 곳, 더 많이 가지고자 하는 인간의 끝없는 물질적 욕망이 가득했던 장소다. 작가는 물질적 욕망의 공간을 자연을 전유한 작품으로 치유하고 과거와는 다른 삶의 방식을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Ver. 1 물 ... 주전자의 꿈(제 1전시장)
전시장 주변을 걸으며 전시를 준비하던 작가는 전시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작은 실개천을 발견했다. 느릿느릿 흘러가는 평범한 시냇물의 소리를 듣는다. ‘빨리 빨리’를 외치며 달리고 있는 우리의 심장 박동이 얼마나 자연의 박자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와 방향을 모르고 뛰고 있는지 아느냐는 나지막한 외침, 처음부터 우리의 심장이 가졌던 박자는 무엇이었는지를 시냇물은 묻는다.
주전자는 과거의 잘못을 씻고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다. 물감에 주전자를 담궜다가 꺼내 말리고 다시 담그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작가는 만물의 나고, 자라고, 사라지고 또 다시 나타나는 생명의 순환을 본다. 기다림과 인간의 의도적인 개입을 거부하고 우연에 의해 만들어진 주전자는 새로운 삶을 꿈꾼다. 위계질서가 없는 비관계적 공간 속의 주전자는 높고 낮음 없이 유유히 흐르는 시냇물과 닮아있다.
Ver. 2 숲 ... 걷기 & 치유(제 2전시장)
예술공간 <거인>을 치유하는 첫 장면이 물이었다면, 다음은 숲이다.
숲을 연상시키는 벽면 위로 작가의 시선이 걷고 있다. 길가를 따라 걸으면서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혹은 우리의 시선이 가 닿았었지만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자연을 예술공간 <거인>에 소환한다. 천천히 썩어 가는 나뭇잎들과 물과 돌이 어우러져 만드는 정사각형의 설치물 역시 냉동 창고의 과거를 치유하는 신령한 기념물이다.
Ver. 3. 하늘 ... Two-Way Box(야외 전시장)
길가를 따라 걷던 작가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닿았던 곳. 야외 전시장에 매달려 있는 박스는 작가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닿았던 곳과 만나는 장소다. 사각의 박스는 하늘과 땅을 잇는 구조물로서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라는 존재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닿는 곳이자 하늘의 시선이 땅으로 향하는 통로가 된다. 내가 하늘을 보고 하늘이 나를 보는, ‘보여지는 것’과 ‘보고 있는 것’이 하나가 되는 몰(沒)을 경험하는 지점이다. 발길을 멈추고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는 지극히 평범한 경험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평범하지만 소외되었던 자신의 경험을 소유하게 한다. 파랑이 스며든 흰색처럼, 흰색이 스며든 파랑처럼, 땅과 나, 하늘과 나는 서로 대상이나 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보는 하나의 경험, 하나의 사건을 만나 새로운 존재, 파랑이 되어간다.
내용 3. 채움보다는 비움 - 고요한 단순
앞서 노병렬 작가의 작품은 미니멀 아트라는 수식어를 떼고 봐야 제대로 볼 수 있음을 말하였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조형적 측면에서 보면 미니멀 아트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환원과 상황의 미학’에 충실하다. 그는 형식적으로 미니멀 아티스트다.
노병렬 작가의 본격적인 작품 ‘고드름 시리즈’의 시작은 원색으로 환원되는 무결점의 화면을 얻기 위해 수없이 반복해서 물감을 캔버스에 올리다가 자연스럽게 자라난 물감고드름의 발견을 통해서였다. 따라서 그의 감각은 완결된 평면 혹은 공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부단한 훈련에 단련되어 있다. 그림을 그리거나 구조물을 만들거나 어떤 형태의 작업이든 간에 하나의 선이 만드는 각도와 진하기 혹은 굴곡의 변화에 따라, 혹은 3차원의 작업이라면 공간을 가르는 구조물의 방향과 질감, 색채의 차이에 따라, 화면과 공간은 다양한 변화와 울림을 만든다. 변화무쌍한 선과 색 그리고 공간의 교차에서 최적의 비례와 균형을 찾는 능력, 미니멀 아티스트로서의 그의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요소다. 설치 작업이 주를 이루는 이번 예술공간 <거인>의 <Flow-잃어버린 파랑을 찾아서>전은 오브제와 <거인>의 공간이 조응하여 만드는 중층적 공간의 미학(형태적, 개념적 관계망)을 관람자에게 선사한다. 그의 작품을 통해 만들어진 상황의 미학은 작가가 수년간 다져 온 감각의 예민함과 치열함의 결과물이다.
<Flow>는 그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면서 세계관을 함축하는 단어다. 자연의 힘과 우연이 작업의 8할을 결정하는 <Flow>, 물 흐르듯 흐르는 것을 지향하는 그가 자신의 작업을 “예술을 빙자한 불편한 활동...”이라 말한다. 언젠가는 예술인 듯 자연인 듯 서로 스며들어 경계가 모호한 어디쯤, 그의 작품을 다시 만날 듯하다.